아르카이오랍토르(Archaeoraptor liaoningensis) 화석 사건의 진위

 

 

 

 

 

 

 

 

 

 

아르카이오랍토르 랴오닝엔시스 슬론이라는 화석은 그 꼬리만큼이나 이름이 길다. 이 긴 이름의 끝에 붙은 '슬론'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 기사를 썼던 필자의 성이다. 본지에 아르카이오랍토르 랴오닝엔시스라는 이름이 공개적으로 언급된 것은 본지에 실린 슬론의 기사가 유일했기 때문에 학계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나 같은 비전문가의 눈에는 이 화석의 몇안 되는 앙상한 뼈들이 마치 지난 일요일 저녁에 먹다 남긴 닭 뼈처럼 보였지만 몇몇 저명한 고생물학자들은 이 화석을 보고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오래 전부터 찾아오던 열쇠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한편 상당히 공격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기로 유명한 고생물학계의 다른 학자들은 이 발견은 싸구려 사기극으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이 화석은 본지 편집장 빌 앨런에게 심각한 골칫거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작년 11월호(한국판은 올해1월호)에서 본지는 중국 북동부의 한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발견된 이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을 '공룡이 조류로 진화하는 복잡한 사슬에서 잃어버린 고리'라고 선언하고, 이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던 것을 자축했다. 그런데 두달 후 그 화석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조작들을 짜맞추어 만든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 어처구니없는 소식에 앨런은 충격과 수치심에 이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냉정을 되찾은 앨런은 나를 불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사건 조사의 전권을 부여받아 워싱턴 본사는 물론 중국과 미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보고, 듣고, 읽은 것을 토대로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 사건의 전말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가시에 대한 본지의 보안 방침이 잘못 적용되고, 학자들의 명성을 지나치게 신뢰한 탓에 야기된 실수였다. 또 기세등등한 전문가들간의 대립과 각자 자신이 더 위대하다는 생각, 희망대로 됐으면 하는 근거 없는 바람, 경솔하게 세운 가정들, 사람들의 실수, 고집, 조작, 험담, 거짓말, 부패,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편없이 부실한 정보 교환 때문에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등장 인물 중 맡은 역을 제대로 수행해 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화석이 완전하지 못했던 것처럼 사건 경위에 대한 내 설명도 메울 수 없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을 것이다.
1997년 7월 하순의 찜통처럼 무더웠던 어느 날, 중국 북동부 랴오닝성의 시아산지아쯔에서 한 농부가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30cm 쯤 되는 얇은 황갈색 석판을 파내면서 아르카이오랍토르 사건은 시작됐다. 다른 이웃 사람들처럼 이 농부도 정기적으로 화석을 파내어 넘기곤 했는데 이번에 파낸 화석은 아주 특이했다. 새처럼 생긴 화석 뼈였는데, 희미한 깃털 자국과 조그만 이가 가지런히 난 부리까지 보이는 것이었다. 농부는 곡괭이와 삽으로 화석을 파냈기 때문에 여기저기 금이 가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화석 판이 붕어빵 틀의 위 판과 아래 판처럼 갈라지기도 해 고생물학자들이 흔히 파티와 카운터파트라고 부르는 석판들이 생겨났다. 이런 식으로 갈라진 화석의 한쪽을 파트라고 하고 다른 한쪽을 카운터파트라고 하는데, 두 판을 붙이면 딱 들어맞게 된다.
농부는 근처를 계속 파다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금 작은 화석 하나를 더 발견했다. 이 화석에는 약 15cm 길이의 빳빳한 꼬리뼈와 머리뼈, 그리고 발 뼈, 등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파트와 카운터파트로 갈라진 상태였다.
나는 이 농부의 이름도 모르며,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했다. 지난 3월, 내가 시아산지아쯔를 찾아갔을 때, 이 농부를 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익명을 보장한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이 없었는데, 그들로서는 모르는 체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근처의 진저우시에서 만난 한 판사의 말에 의하면 불법 화석채취는 2∼3년의 징역형부터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화석을 해외로 빼돌려 수만 달러에 판 경우는 최고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은 미국으로 밀반출돼 8만 달러에 팔렸다.
그래서 지금 내가 농부에 관해 쓰려는 이야기는 그 화석을 샀던 거래상을 통해 농부에게 물었던 질문과 역시 전해들은 대답, 그리고 내가 현지에서 직접 봤던 것을 토대로 작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 한 칸짜리 집에서 농부는 꼬리의 카운터파트 부분은 한편에다 밀쳐 놓고, 집에서 만든 접착제로 꼬리의 파트 부분을 새처럼 생긴 화석의 몸체 아래 부분에 붙였다. 또 새 몸체 화석의 카운터파트 부분과 어쩌면 그 동안 모아두었던 다른 화석들도 이용해가며 파트 부분에 없는 다리와 발을 붙여 넣었을 것이다. 고생물학자들과는 달리 일반 화석 애호가들은 전시해도 좋을 만큼 그럴듯하게 모양새를 갖춘 화석을 선호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농부는 가장 기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잃어버린 고리' 즉 몸집이 작은 육상 공룡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의 꼬리가 달려 있고 이빨이 있는 원시 조류, 아르카이오랍토르 랴오닝엔시스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꼬리가 공룡을 흔드는 상황이 돼버려, 꼬리가 붙어 있는 자리가 원래 제자리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 농부가 과연 몇 푼 더 받으려고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기 나름대로 맞다고 생각한 조각들을 찾아서 붙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화석을 발견했을 당시에 농부는 분명히 다른 몸체에 붙어있던 꼬리를 봤을 것이다.
나와 종일 대화를 나누었던 중국인 거래상은 이 사건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신변 안전을 위해 그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이 거래상은 자신이 1998년 6월에 농부로부터 문제의 아르카이오랍토르의 화석을 샀으며, 그것이 가짜라는 것은 그 때도 지금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법에 걸리지 않도록 화석을 거래해온 경위를 설명하느라 무척 애썼지만, 자신이 불법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는 구이린시(市)의 한 과학연구소에서 일하는 '파트너'를 통해 그 화석은 '합법적으로 취득한 것'이며, '표본 교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수출한 것'이라는 내용의 '증명서'를 받았다고 했다.
1982년에 제정된 중국의 법은 척추동물 화석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으나 현재 여섯 번째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당장은 법이 없다"는 것이 거래상의 주장이었다. 베이징 당국은 어떤 화석도 중국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엄청난 양의 화석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밀반출은 대부분 지방 관리들을 매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거래상은 1999년 2월 초, 애리조나 주의 투손에서 열린 보석과 광물을 전시라는 행사장에서 문제의 이 화석을 팔았다. 구매자는 유타주의 플랜딩이라는 소도시에 있는 비영리 공룡박물관의 관장인 스티브 A. 체카스였다. 그는 거래상의 모텔 방에서 화석을 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화석이 진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문을 갖지 않았으며,
박물관의 적극적인 후원자인 블랜딩의 상업가 M.데일 슬레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거래상이 요구하는 가격인 8만 달러를 마련했던 것이다.
체카스와 그의 아내 실비아는 둘 다 실물 크기의 공룡 모형을 제작하는 미술가인데, 이들의 작품 중 몇 개는 세계 곳곳의 유명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부부는 책도 쓰고 학술지에 논문도 발표해왔지만, 둘 다 박사 학위가 없다. 이 점은 체카스 부부의 신경을 무척 건드리는 부분으로 박사 학위로 무장한 몇몇 고생물학자들이 이들을 아마추어로 무시해 버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체카스 부부와 슬레이드는 이 새로운 화석이 블랜딩 공룡박물관의 최고 소장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또'이 화석이 전문가들은 물론 엄청나게 많은 수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명물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그런데 이런 꿈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만 상황에서도, 슬레이드나 체카스 부부는 8만 달러를 돌려 받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 거래상은 예전에도 돈을 돌려주고 물건을 교환해 준 적이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도 슬레이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내게 되물었다. "왜 돈을 돌려 받습니까?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렸는데요."그의 말에 의하면, 이 화석은 "1백만에서 1백 5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감정을 받았으며, 그의 회사는 이를 비영리 단체인 블랜딩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그 액수만큼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계획이라는 것이다.
화석을 집으로 가져온 지 일주일쯤 지난 후, 체카스 부부는 캐나다 앨버타주의 왕립 티렐 고생물박물관에 근무하는 오랜 친구 필립 J.커리와 이 화석에 대해 상의했다. 체카스 부부는 자신들이 쓰려는 논문에 캐나다의 유명한 과학자인 커리가 공동 필자로 참여해줬으면 했고 커리도 그런 제의에 관심을 보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종종 자문을 해주었던 커리는 본지 미술 편집자인 크리스토퍼 P.슬론에게 이 화석에 관해 알렸으며, 슬론은 이 조그만 화석이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에서 발견된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과 컴퓨터 단층촬영을 통해 분석한 합성된 모습. 돌 판의 색이 다른 것은 다른 공룡의 화석임을 의미한다. (사진 제공 : 텍사스대 고해상도 엑스선 컴퓨터 단층 촬영 연구실-Nature)

 

 

 

 

 

 

 

 

 

 

 

 

그러나 커리와 슬론은 중국 당국이 밀수품으로 간주 할 것이 뻔한 화석에 연루됨으로써 자신들이 속해 있는 기관 관계자들의 중국 입국이 어려워지는 불상사는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어렵사리 체카스 부부를 설득해, 연구가 끝나면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을 중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합의를 봤다. (이 화석은 결국 지난 5월25일에 중국으로 반환됐다.)
화석을 받기로 돼 있던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고인규연구소 소장은 커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 연구소의 과학자인 슈싱 박사를 '석 달에서 다섯 달 정도' 미국에 보내 아르카이오랍토르 연구를 돕고 학술 논문을 같이 쓰도록 했다.
그러나 본 협회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슈싱은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블랜딩에서 겨우 이틀 동안 화석을 들여다본 뒤 워싱턴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으로 떠밀려 나갔다. 그러니 그에게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슈싱의 이름이 논문에 오르긴 했으나 미국인 일색의 분위기에 이국적인 맛을 더해준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두 달 후 바로 이슈싱이 모든 이야기를 뒤집어 엎었으니 정말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석이 중국으로 반환되리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커리는 이 프로젝트에 관여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슬론은 이를 기사로 싣겠다고 빌 앨런의 약속을 받아냈다. 체카스 부부와 커리가 슈싱과 함께 먼저 논문을 쓰고, 이를 권위 있는 과학 전문학술지인 '네이처'에 싣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전문적이며 학술적인 과학과 일반인을 위한 과학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본지의 편집방침은 각 전문 분야의 학자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과학적 발견은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네이처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에 대한 기사의 발표 시기를 서로 조정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곡 실패했다. 이 때문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치고 기사를 그대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원래 아르카이오랍토르 부분은 깃털 달린 공룡에 관한 주요 기사에 딸린 박스 기사 정도로 다루기로 돼 있었다. 슬런은 그 동안 여러 기사의 그림 부분을 맡아왔었지만 기사는 한 번도 써보겠다고 앨런을 설득했다. 기사는 6개월 후인 11월호에 게재될 예정이었다.
슬론과 커리가 함께 일하게 된 것도 불운있었다. 처음으로 기사를 쓰는 슬론은 기자로서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 커리의 명성이 워낙 높기 때문에 그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의 진술을 재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커리가 자료 제공자라기보다는 기사를 같이 쓰는 사람이 돼버린 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커리는 당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다른 작업들에 정신을 빼앗긴 채, 아르카이오랍토르 프로젝트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도 않았다.
3월 6일, 커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아 블랜딩으로 날아가 처음으로 그 화석을 조사했다. 여기서 첫 번째 경종이 울렸다. "꼬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분이 안 보였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리고 두 다리를 봤더니 다리 한 개를 쪼개어 둘로 만든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스티븐도 동의하더군요. 그 두 개를 맞춰 보면 쪼개진 부분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틀림없어요."
그러나 체카스 부부가 기억하는 상황은 다르다. 당시 커리는 한쪽 다리만 언급했을 뿐이며,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꼬리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관련자들은 인터뷰하는 동안 이처럼 엇갈린 주장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면 자신들의 명성이 손상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각자 진술하는 내용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당시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던 점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각자 다른 사람을 탓할 뿐이었다.
경종을 울리는 신호들이 더 있었지만 앨런이 이 기사에 대한 철저한 보안 유지를 지시했던 탓에 이런 신호들은 무시되거나 상부로 보고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신호들 중에 하나라도 자신에게 전달됐더라면 작업을 당장 중지시켰을 것이라는 게 앨런의 말이다.
정말 큰 피해를 준 실책은 커리가 슬론에게 자신이 염려하는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과학자인 커리에 대한 존경심에 눈이 먼 슬론은 그에게 철저하게 질문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애초에 커리가 이 일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커리도 자기가 맡은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분명히, 내가 직접 협회에 알렸어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해줄 거라고 믿어서는 안 됐는데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발표 준비가 하나하나 진척되는 동안 커리는 블랜딩에서 진행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일 새도 없이 캐나다, 몽골, 유럽, 아르헨티나 등의 다른 현장들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작년 8월 2일 커리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에 가서, 티머시 로 교수가 만든 고해상도 엑스선 컴퓨터 단층촬영 시설이 있는 연구실에서 체카스 부부를 잠깐 만났다. 로 교수와 그의 조수들이 적어도 100시간 이상 단층촬영을 해서 얻은 여러 장의 사진을 기초로 이 화석은 무수하게 금이 가 있으며 도합 88조각을 붙여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제 짝이 아닌 조각들을 교묘하게 붙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있었다. 로 교수는 논문의 공동 필진에 자기 이름을 포함시키는 대가로 검사 비용을 1만 달러로 깎아 주기로 했다. 이 비용은 본지에 커리에게 지원한 연구비에서 지급됐다.
커리가 지하에 있는 연구실로 들어갔을 때 로 교수와 체카스 부부는 이미 사진 검토를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로 교수가 내게 말한 바에 의하면 검사 결과 "꼬리와 몸통은 연관이 없는 것으로"밝혀졌으며 이 사실을 체카스 부부에게도 설명했다고 한다. "정말 말하기 어려웠지만, 심하게 부서진 화석을 그럴싸하게 엉터리로 붙여 놓은 것으로 보아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그 부부에게 말했죠. 몹시 충격을 받더군요. 나는 체카스 부부가 그 화석에 8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커리가 기억하는 내용은 이와는 다르다. 자신이 연구실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체카스 부부와 로 교수가 몸통과 꼬리가 동일한 공룡의 것이라고 합의를 본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 몇 시간 동안 커리는 물론 로도 이런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마음이 찜찜했던 것은 분명하나 이들은 결국 체카스 부부의 압력에 굴복해 버렸다. (만약 슈싱이 우연히 꼬리의 카운터파트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커리와 로는 지금도 아르카이오랍토르와 체카스 부부가 공동으로 누리는 영광을 함께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로와 커리는 미심쩍은 부분을 그들 사이에서만 거론하는 데 그치고 이 부분을 논문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끝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로의 말에 따르면, 스티븐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보낼 기사 송고일이 임박했으므로 이견을 조정해 일을 빨리 진척시키자고 재촉했다고 한다. 이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빌 앨런은 "만약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중요한 기사에 뭔가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눈치챘더라면, 설사 그 날이 잡지가 인쇄에 들어간 9월 19일이었다고 해도 기사가 나가는 것을 중지시켰을 겁니다. 20만 달러를 손해보더라도 말입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에 대한 체카스 부부의 설명은 로의 컴퓨터 단층촬영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나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도 더 안 보였다"고 한다. 또 로가 "자기 연구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고"꼬리와 몸통 사이의 금을 구실로 "갑자기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로와 체카스 부부 사이의 이견은 각자의 자만심과 성격 때문에 더 첨예하게 드러났다. 로는 이 부부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는 태도"와 정식으로 교육 과정을 거쳐 박사 학위를 받지 않은 점 때문에 이들을 무시했으며, 체카스 부부는 로를 "누구든 기꺼이 희생시킬 정도로 야심이 큰 상아탑의 엘리트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로는 내게 "나는 다만 커리의 요청으로 대가를 받고 그의 작업을 도와줬을 뿐"이며 협회의 연구비 수혜자는 커리였기 때문에 자신은 커리에 관해 비밀을 지킬 의무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얼마나 푸대접을 받는지 잘 아시죠? 하지만 체카스 부부가 이런 사실을 숨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때 두 번째 경종이 울렸던 것이다.
작년 9월 첫째 주에 커리는 티렐 박물관의 화석 전문 기술자인 케빈 올렌백을 블랜딩에 보내 화석을 '준비'시키도록 했다. 이는 과학자들이 이 화석을 잘 조사할 수 있도록, 현미경으로 보듯이 세밀하게 뼈를 청소하고 오랜 세월 동안 쌓인 흙을 털어내는 대단히 힘든 과정이다.
작업을 마치고 앨버타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올랜백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신랄한 논조로 자세히 적어 당시 고비 사막에 있던 커리에게 전자 우편을 보냈다.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은 "적어도 세 개, 많게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화석을 가지고 합성해서 만든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체카스 부부에게는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슬론에게도 이 세 번째 경종은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워싱턴에서 만난 슬론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그저 스티븐과 커리가 아르케랩터가 날 수 있었느냐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았다는 결론이 나자, 나는 바로 앨런에게 달려가 '굉장한 소식이 있다'고 전했지요." 그래서 앨런은 아르카이오랍토르에 관한 부분을 공룡 기사의 앞쪽에 실어서 극적인 도입부를 만들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비슷한 시기인 8월 13일, 아마 스무 차례는 다시 쓰고 수정을 거듭했을 논문이 네이처에 송고됐다. 논문은 특급 우편으로 블랜딩에서 런던으로 배달됐고, 워싱턴에 있는 슬론에게도 그 사본이 전달됐다. 논문 제목은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와 비슷한 꼬리를 가진, 이빨이 달린 새로운 새'였다. 스티븐 체카스, 커리, 로, 슈싱이 공동 필자인 이 논문의 도입부에는 '중국에서 발견된 이 원시 조류는 … 화석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새인 시조새보다 … 새에 가깝게 진화했으며 …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의 꼬리와 놀랄 만큼 닮은 … 막대기처럼 생긴 꼬리뼈가 있다'고 명시했다.
논문의 둘째 페이지는 '카운터파트에 붙어 있던 오른쪽 다리 조각을 떼서 파트의 왼쪽 다리 자리에 갖다 붙였고 꼬리도 아마 카운터파트에 있던 것을 붙인 것 같다'고 지적했지만 이것이 염려할 사항이란 힌트는 전혀 없었다. 이 문제는 그 이후 페이지에서도 언급됐다.
슬론은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문제점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것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확실히 알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당시 몇 달 동안 이 부분을 읽고 그냥 넘기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꼬리나 다른 어떤 부분도 다른 동물의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겁니다."
논문의 다섯째 페이지에는, 조류로 보이는 동물에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의 것과 같은 꼬리가 달렸다는 사실이 육상 공룡이 조류로 진화하는 과정에 대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즉, 이것이 바로 체카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말했던 바로 그 "잃어버린 고리"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에는 손으로 그린 이 동물의 뼈대를 삽화로 실었는데, 오른쪽 다리와 발, 그리고 꼬리는 좀더 어둡게 그려 놓았다. 그리고는 다리와 발이 "카운터파트에서 나온 조각들을 파트에 갖다 붙인 부분들"이라며, "꼬리 역시 카운터파트에서 가져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삽화 설명에 적어 놓았다.
한편 이 논문이 런던으로 배달되는 동안, 네이처의 수석 편집인 헨리 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 홍보부의 바버라 모펫에게 성난 내용의 메시지를 전자 우편으로 보냈다. 네이처는 아직도 논문을 받지 못했으며, 원래 예정대로 9월에 게재하기에는 전문가들의 검토를 받을 시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는 네이처에 기사가 실린 뒤, 10월에 기자 회견을 가짐과 동시에 슬론의 기사가 실린 11월호를 출판할 계획이었다. 헨리 지는 체카스 부부는 빼고 로, 커리, 슈싱에게도 같은 내용의 전자 우편을 보냈다.
논문을 발송한 이튿날인 8월 14일에 로는 동료들과 슬론에게는 알리지 않고 헨리 지에게 전자 우편으로 답신을 보냈다. 자신은 이 프로젝트에 어쩌다 "연루됐으며, 전체 작업이 그렇게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그는 "체카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와 함께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급급한 나머지 프로젝트에 대해 도가 지나치게 떠벌렸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이 프로젝트가 학술적인 면을 완전히 손상시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도 썼다. 하지만 그는 또 아르카이오랍토르는 "아주 중요한 화석"이며, 그래서 "이 삐걱거리는 프로젝트 팀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으며,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바로 잡아주려고 몇 시간을 더 투자하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로의 편지를 읽어주자 슬론은 놀라면서 "만일 로가 그 때 우리에게 그런 분노의 기미를 조금이라도 내비쳤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8월 20일, 헨리 지는 체카스 부부에게 보낸 전자 우편 메시지에서 "귀하의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할 것인지를 결정할 준비가 안 됐다"고 썼다. 이 편지에는 논문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틀렸다는 언급은 전혀 없이, 전문가들이 논문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기사 게재를 무기한 연기해 달라는 자신들의 요청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가 거절했다며 이를 비난하는 내용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논문의 내용을 약간만 바꾼 채 다른 과학 기술지인 '사이언스'로 긴급 발송했다. 사이언스는 전문가들에게 논문을 검토하게 한 후, 아르카이오랍토르가 가진 조류의 특징들은 증거가 더 필요하다며 논문 게재를 거절했다. 한번 더 고쳐 써서 보냈지만 또 거절당했다. 또 다시 경종이 울렸던 셈이다.
노란색 테두리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수백만 권이 인쇄돼 나오기 시작했는데도 커리와 체카스는 논문이 어디선가 발표될 것이라며 슬론과 앨런에게 계속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논문은 블랜딩 박물관에서만 출판됐을 뿐 어느 과학 학술지에도 실리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절실히 원했던 학계의 지지없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제 홀로 서야만 했다.
작년 10월 15일, 정성 들여 마련한 기자 회견장에서 그 기사는 예상대로 '잃어버린 고리' 운운하며 요란하게 언론을 탔고, 이제 내셔널 지오 그래픽이 낭패를 당할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곧바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0월 20일에서 23일까지 덴버에서 열린 고척추동물학협회 회의에서 조류가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이론을 반대하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 아르카이오랍토르 기사를 비판했던 것이다. 소문이 무성했다. 로는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의 컴퓨터 단층촬영 조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화석이 조작됐다는 이유 때문에 거절당한 논문의 공동 필자 중 한 사람으로 이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화석을 연구할 새로운 장비를 갖추고 있어요." 이전에 헨리 지에게 보낸 그의 전자우편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정말 아이로니컬하다. 12월 20일, 슈싱이 논문의 공돌 필자들과 슬론에게 띄운 전자우편은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의 '잃어버린 고리설'을 완전히 뒤엎고 말았다. 그는 "나쁜 소식을 보내게 돼 정말 유감입니다"라며 힘들여 쓴 영어로 불길한 운을 땠다. 랴오닝성의 한 농부가 그에게 드로마이오사우루스류의 몸통에 연결된 아르카이오랍토르 꼬리의 카운터파트를 보여줬다는 것이었다.
카운터파트에 꼬리가 박혀 있었던 자리와 노란 산화철 자국이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의 고리 부분과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은 모양인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그로부터 한 달 후 베이징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이 카운터파트를 봤을 때 나도 그 사실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슈싱은 "100% 확신하는 바 …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이 위조된 가짜임을 시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꼬여버린 이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파국을 맞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슈싱의 전자우편 내용을 다듬어 올해 3월호 '열린마당'에 실었는데, 그의 요구대로 '위조'라는 말 대신 '합성물'이라는 단어를 썼다. 낙심한 체카스 부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화석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 썼으나 4월 4일 마침내 패배를 인정했다. 이 날 워싱턴에서 열린 고생물학자들의 모임에서 체카스 부부는 "정말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은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가 주최한 이 모임에서 처음으로 이 사건과 무관한 과학자들이 아르카이오랍토르 화석과 슈싱이 새로 찾아낸 두 번째 화석을 나란히 놓고 조사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들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없이 꼬리가 두 번째 화석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빌 앨런은 이번 일을 통해 과학자들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격언에 담긴 지혜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유별난 주장은 유별난 증거가 필요하다"는 격언이 있지요. 이번에 협회는 유별난 주장을 했어요. 하지만 증거는 너무도 평범했습니다.